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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이라는 가장 단단한 뼈대 - 영화 <말모이>와 조선어학회 사건

by 꿈꾸는 은퇴챔피온 2026.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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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글을 쓰며 키보드를 두드릴 때마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쓰는 이 '우리말'이 얼마나 큰 희생 위에서 지켜진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엄유나 감독의 영화 <말모이>는 총칼이 아닌 '사전 편찬'이라는 방식을 통해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맞선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투쟁을 그립니다.

오늘은 1940년대 일제의 가혹한 언어 탄압과, 전국 방방곡곡의 사투리를 모아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려 했던 '조선어학회 사건'의 역사적, 인문학적 의미를 짚어보겠습니다.

1. 1940년대, 정신의 근간을 파괴하는 문화적 탄압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0년대, 일제는 태평양 전쟁의 광기 속에서 조선인들을 철저한 황국신민으로 개조하려 했습니다. 창씨개명으로 이름을 억지로 바꾸게 한 데 이어, 마침내 학교와 공공기관에서 조선어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폭거를 저지릅니다.

건축물의 기초와 뼈대가 무너지면 건물이 순식간에 붕괴하듯, 말과 글은 한 민족의 정신과 고유한 문화를 떠받치는 가장 단단한 기반입니다. 일제는 이 기초를 허물어 조선이라는 정체성 자체를 지구상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려 했던 것입니다. 우리말을 쓰면 가혹한 체벌을 받아야 했던 당시의 비상식적인 현실은, 언어 통제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치명적인 영혼의 말살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2. 전국에서 모인 사투리, 민중이 쌓아 올린 지식의 탑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감동은 지식인 엘리트들뿐만 아니라, 까막눈이었던 평범한 백성 김판수(유해진 분)가 글을 깨치고 우리말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영화 속 '말모이' 작전은 단순히 단어를 수집하는 학술적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전국의 흩어진 사투리를 모으기 위해 이름 모를 수많은 백성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편지를 보냅니다. 이는 각 지역의 고유한 정서와 삶이 담긴 조각들을 하나로 엮어, 일제의 탄압이라는 거대한 비바람을 견뎌낼 수 있는 견고한 지식의 탑을 쌓아 올린 위대한 '공동체적 연대'였습니다. 말은 사람의 입을 통해 바람처럼 흩어지기 쉽지만, 그것을 사전이라는 형태로 기록하여 단단하게 묶어낼 때 비로소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영원한 유산이 됩니다.

3. 조선어학회 사건의 뼈아픈 희생과 남겨진 원고

역사적 사실(팩트)을 살펴보면 이 위대한 여정의 끝은 매우 참혹했습니다. 1942년, 일제는 '조선어학회'를 독립운동 단체로 규정하고 치안유지법을 무리하게 적용하여 관련 학자들을 대거 체포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역사에 뼈아프게 기록된 '조선어학회 사건'입니다.

끔찍한 고문 속에서 이윤재, 한징 등 훌륭한 학자들이 결국 차가운 감방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일제는 사전을 만들기 위해 모아둔 수만 장의 귀중한 원고마저 압수해 버렸습니다. 영원히 사라질 뻔했던 이 원고들은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 기적적으로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발견됩니다. 혹독한 탄압과 지식인들의 희생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은 이 원고 뭉치는, 무력으로 인간의 육신은 꺾을 수 있어도 그 안에 담긴 민족의 얼과 치열한 기록은 결코 소멸시킬 수 없음을 증명하는 숭고한 증거입니다.

4.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말모이'를 기억하는 법

<말모이>를 다 보고 나면, 지금 우리가 너무나 자유롭게 우리말을 사용하여 블로그에 정보성 글을 발행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기적처럼 느껴집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분별한 혐오 표현이나 과도한 외래어 오남용 등으로 우리말의 가치를 스스로 훼손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1940년대의 평범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이 단단한 언어의 뼈대를 더욱 아름답고 건강하게 가꾸어 나가는 것, 그것이 오늘날 이 글을 읽고 쓰는 우리가 가져야 할 인문학적 책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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