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로그에 역사 인문학 글을 연재하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파고들다 보면, 가끔은 유령이나 괴물보다 '인간의 탐욕'이 훨씬 더 섬뜩하게 다가오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플라워 킬링 문(Killers of the Flower Moon)>이 바로 그런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1920년대 미국 오클라호마주에서 발생한 오세이지족(Osage Nation)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실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은 척박한 땅에서 솟아난 검은 황금(석유)이 어떻게 원주민들의 삶을 핏빛으로 물들였는지, 자본과 인종차별이 결합된 끔찍한 인권 유린의 역사를 인문학적 시각으로 파헤쳐 보겠습니다.
1. 축복이자 저주가 된 석유, 1920년대 오세이지족
역사적 팩트를 거슬러 올라가면, 아메리카 원주민인 오세이지족은 백인들의 압박에 밀려 원래 살던 비옥한 땅을 빼앗기고 척박한 오클라호마의 암석 제대로 강제 이주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이 불모지에서 엄청난 양의 석유가 터져 나옵니다.
석유 채굴권을 쥐게 된 오세이지족은 1920년대 당시 '1인당 국민 소득 세계 1위'라는 막대한 부를 누리게 됩니다. 백인 운전사를 고용하고 화려한 저택에 살며 최고급 옷을 입는 원주민들의 모습. 하지만 이 갑작스러운 부는 꿀을 보고 몰려드는 벌떼처럼, 탐욕에 눈이 먼 수많은 백인 사기꾼과 범죄자들을 이 지역으로 끌어들이는 치명적인 저주가 되었습니다.
2. 합법을 가장한 폭력: 후견인 제도의 민낯
제가 당시 사료를 교차 검증하며 가장 분노하고 소름 돋았던 부분은 범죄의 방식이었습니다. 총칼로 돈을 빼앗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법과 제도를 이용한 합법적인 착취'입니다.
당시 미국 정부는 흑인이나 아메리카 원주민이 거대한 자산을 스스로 관리할 '지적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독한 인종차별적 편견 아래, 이들에게 반드시 백인 '후견인(Guardian)'을 지정하도록 법을 만들었습니다. 백인 후견인의 허락 없이는 자신의 돈으로 생필품조차 마음대로 살 수 없었습니다. 오세이지족의 재산을 관리하게 된 백인들은 물건값을 부풀려 횡령하거나 서류를 위조해 그들의 재산을 합법적으로 빼돌렸습니다. 보호라는 명목으로 약자의 권리를 완전히 통제한 이 후견인 제도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얼마나 교묘하게 구조적 폭력을 정당화하는지 보여주는 뼈아픈 증거입니다.
3. 선량한 얼굴을 한 악의 평범성
영화의 핵심 인물인 윌리엄 헤일(로버트 드 니로 분)과 그의 조카 어니스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는 이러한 탐욕의 결정체입니다. 헤일은 겉으로는 오세이지족을 돕는 자애로운 지역 유지처럼 행동하지만, 뒤로는 석유 채굴권을 상속받기 위해 원주민 여성들과 백인 청년들을 결혼시킨 뒤 일가족을 차례로 독살하고 총살하는 악마 같은 계획을 지휘합니다.
더 끔찍한 것은 어니스트의 태도입니다. 그는 오세이지족 여성 몰리와 결혼하여 진심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듯 보이지만, 삼촌의 지시에 따라 서서히 아내에게 독약을 먹이는 데 일조합니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돈을 위해 가족을 서서히 죽일 수도 있다"는 이 기괴한 모순.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처럼, 이들에게 오세이지족은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 그저 상속을 위한 재산 증식의 도구로 물상화(物象化)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4. 잊혀진 역사가 현대 사회에 던지는 경고
꼬리를 물던 이 연쇄 살인 사건은 결국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전신인 수사국(BOI) 요원들이 파견되면서 덜미를 잡히게 됩니다. J. 에드거 후버는 이 사건을 해결하며 FBI의 막강한 권력을 구축하는 발판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수백 명이 넘는 오세이지족이 목숨을 잃었음에도 처벌받은 백인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영화 <플라워 킬링 문>은 권력과 자본이 결탁하여 소수자의 역사를 어떻게 지워버렸는지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립니다. 이 100년 전의 실화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질문을 던집니다. 현대 사회 역시 '보호'나 '관리'라는 명목 아래, 경제적/법률적 지식이 부족한 사회적 약자들을 교묘하게 착취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본 앞에서 인간성을 잃어버린 헤일과 어니스트의 모습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안의 탐욕을 비추는 서늘한 거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