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 넘게 현장에서 수많은 업체들과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를 조율하다 보면, 한쪽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으로 강경하게 맞대응하는 것이 당장은 통쾌해 보일지 몰라도, 결국 양쪽 모두의 출혈만 강요하는 파멸적인 치킨 게임으로 끝나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뮌헨(Munich)>은 바로 이 보복의 악순환이 국가적, 역사적 차원으로 확장되었을 때 인간의 영혼과 세계의 평화가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서늘하게 추적한 명작입니다. 시즌 4의 대미를 장식할 이번 63편에서는 1972년 뮌헨 올림픽 참사와 이스라엘의 비공식 암살 작전이라는 뼈아픈 팩트를 바탕으로, 제국주의가 남긴 팔레스타인 분쟁의 지정학적 배경과 폭력의 허무주의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깊이 있게 분석해 보겠습니다.
1. 평화의 제전을 피로 물들인 1972년 뮌헨 올림픽
영화의 출발점이 되는 1972년 서독 뮌헨 올림픽은, 과거 나치 독일이 개최했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어두운 이미지를 씻어내고 '평화와 화합'을 상징하고자 했던 역사적 행사였습니다. 그러나 이 축제는 팔레스타인 무장 테러 단체인 '검은 9월단(Black September)'이 이스라엘 선수촌에 난입하여 선수와 코치 11명을 인질로 잡고 살해하면서 최악의 비극으로 돌변합니다.
이 끔찍한 테러에 전 세계가 경악했고, 분노한 이스라엘 정부(당시 골다 메이어 총리)는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팔레스타인 지도부 11명을 암살하기 위해 정보국 모사드(Mossad)의 최정예 요원들을 유럽으로 비밀리에 파견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화의 뼈대가 되는 역사적 팩트, 이른바 '신의 분노 작전(Operation Wrath of God)'의 서막입니다. 합법적인 재판이나 국제사회의 절차를 무시하고, 국가가 직접 비공식적인 '피의 복수'를 지시한 것입니다.
2. 지정학적 비극의 뿌리: 제국주의의 모순된 외교
이 끔찍한 테러와 복수극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왜 이토록 서로를 죽일 듯이 증오하게 되었는지 그 지정학적 배경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 근원에는 앞선 49편 <로렌스 오브 아라비아>에서 다루었던 서구 제국주의(특히 영국)의 교활하고 이중적인 외교 정책이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아랍인들에게는 독립국 건설을 약속(맥마흔 선언)해 놓고, 동시에 유대인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같은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벨푸어 선언)하는 치명적인 모순을 저질렀습니다. 하나의 좁은 땅을 두고 두 민족에게 각기 다른 약속을 남발한 제국주의의 탐욕은, 결국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수백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을 발생시켰습니다. <뮌헨>에서 묘사되는 테러리스트들의 잔악함 이면에는, 서구 열강의 무책임한 펜대 놀림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약소민족의 깊은 절망과 역사적 억울함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입니다.
3. 폭력의 뫼비우스 띠: 괴물을 잡기 위해 괴물이 되다
모사드 요원인 주인공 애브너(에릭 바나 분)와 그의 팀원들은 조국을 위한다는 애국심으로 무장한 채 유럽 전역을 돌며 타깃들을 하나씩 암살해 나갑니다. 초반부에는 철저한 계산과 외과 수술 같은 정밀한 타격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인문학적 관점에서 폭력은 결코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합니다. 애브너 팀이 팔레스타인 지도자 한 명을 죽일 때마다, 그 빈자리에는 암살당한 전임자보다 훨씬 더 과격하고 잔인한 강경파가 들어섭니다. 복수는 팔레스타인의 더 큰 테러를 불렀고, 이에 맞서 애브너 팀 역시 민간인의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맹목적인 살인 기계로 전락해 갑니다. "니체가 말했듯,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철학적 경구가 국가 간의 복수극 속에서 얼마나 참혹하게 현실화되는지를 이 영화는 적나라하게 고발합니다.
4. 도덕적 붕괴와 허무주의, 끝나지 않는 비극의 예고
작전이 길어질수록 애브너의 영혼은 철저하게 파괴됩니다. 조국을 위해 손에 피를 묻혔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국제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그들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애브너는 동료들을 잃고 씻을 수 없는 편집증적 공포에 시달리며, 자신이 지키려 했던 '가족'과 '조국(집)'이라는 가치로부터 완전히 소외된 채 미국 뉴욕으로 도피합니다.
영화의 엔딩 씬, 모든 희망과 도덕성을 잃어버린 애브너의 텅 빈 눈빛 뒤로 뉴욕의 '쌍둥이 빌딩(세계무역센터)'이 아스라히 화면에 잡힙니다. 이 의도적인 연출은 1970년대의 보복 암살 작전이 결국 근본적인 증오를 치유하지 못했으며, 그 폭력의 악순환이 훗날 2001년의 9.11 테러라는 또 다른 거대한 비극으로 이어졌음을 암시하는 소름 끼치는 역사적 은유입니다. <뮌헨>은 피로 쓴 복수극이 결국 허무한 뫼비우스의 띠일 뿐이며, 대화와 공존을 포기한 폭력은 승자 없이 모두의 영혼을 갉아먹는다는 뼈아픈 인문학적 교훈을 현대 사회에 던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