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간 건설 현장에서 대규모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자금을 다루고 수많은 하도급 업체의 재무 건전성을 평가하는 실무를 총괄해 오면서 절대적으로 경계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바로 시공사를 감시해야 할 '감리 업체'와 '신용평가 기관'이 시공사로부터 뒷돈을 받고 부실 공사를 눈감아주는 완벽한 유착 관계가 형성될 때입니다. 감시자가 뇌물에 포획되는 순간, 그 건축물은 서류상으로는 가장 안전한 1등급 고층 빌딩이지만 실상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시즌 5 '자본주의와 경제 위기의 역사'를 이어가는 98편에서는 찰스 퍼거슨 감독의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작품상 수상작 <인사이드 잡(Inside Job, 2010)>을 다룹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결코 시장의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가장 똑똑한 엘리트들이 기획한 '내부자들의 완벽한 범죄'였음을 폭로하는 묵직한 작품입니다. 오늘은 신용평가사들의 등급 조작 카르텔이라는 경제적 팩트와, 자본의 탐욕을 정당화해 준 지식인들의 도덕적 해이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철저히 해부해 보겠습니다.
1. 경제적 팩트체크: 무디스와 S&P의 '등급 조작 카르텔'
2008년 파국을 불러온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와 이를 엮어 만든 부채담보부증권(CDO)은 그 자체로 쓰레기 부실 자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쓰레기들이 어떻게 전 세계 연기금과 국책 은행들에게 '가장 안전한 투자처'로 팔려나갈 수 있었을까요? 그 배후에는 무디스(Moody's)와 S&P, 피치(Fitch) 등 세계 3대 신용평가사들의 노골적인 등급 조작이 있었습니다.
정상적인 시장이라면 신용평가사는 투자자들을 위해 금융 상품의 위험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시 이들은 엉뚱하게도 그 상품을 만들어 파는 '월스트리트 투자은행들'로부터 막대한 수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고객(투자은행)이 돈을 주며 "최고 등급(AAA)을 찍어달라"라고 요구하면, 평가사들은 그 상품이 부실 덩어리임을 알면서도 경쟁사에 수수료를 뺏기지 않기 위해 묻지 마 AAA 도장을 찍어주었습니다. 감시자가 도둑에게 고용되어 도둑의 장부 조작을 합법으로 인증해 준 이 기형적인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 구조가 바로 전 세계를 속인 금융 카르텔의 뼈아픈 경제적 팩트입니다.
2. 회전문 인사와 지식인들의 도덕적 해이
이 영화가 대중에게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준 지점은, 월스트리트의 로비스트들과 금융 당국의 관료, 그리고 대학의 저명한 경제학 교수들이 완벽하게 한 몸이 되어 움직인 '산학(産學) 정경유착'의 고발입니다.
1990년대 후반 금융 규제 완화를 주도하여 파국의 빗장을 열어젖힌 핵심 관료들은, 정권이 바뀌면 월스트리트 대형 은행의 임원으로 자리를 옮겨 수십억 원의 보너스를 챙겼습니다(이른바 '회전문 인사'). 더 소름 돋는 것은 아이비리그 명문대의 저명한 경제학 교수들입니다. 그들은 학자라는 객관적이고 거룩한 권위를 내세워 "파생상품 규제 철폐가 국가 경제에 이롭다"는 논문을 발표했지만, 실상은 월스트리트 금융사나 아이슬란드 상공회의소 등으로부터 막대한 뒷돈(컨설팅 비용)을 받고 쓰인 '맞춤형 청부 논문'이었습니다. 학문적 양심마저 자본의 달콤한 로비 자금에 포획되어, 대중을 기만하는 세련된 무기로 전락해 버린 지식인들의 끔찍한 도덕적 해이입니다.
3. 합법을 가장한 엘리트들의 약탈, 그리고 시스템의 맹점
인문학적 관점에서 <인사이드 잡>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합법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기만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은행 강도가 총을 들고 은행을 털면 즉시 감옥에 가지만, 하버드와 예일대를 졸업한 엘리트 금융인들은 정교한 수학 공식(파생상품)과 막대한 로비 자금을 동원해 '자신들의 사기 행위를 합법으로 만들어주는 법안'을 직접 통과시켰습니다. 그들은 전 세계 서민들의 노후 자금과 내 집 마련의 꿈을 증발시켰음에도, 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단 한 명도 감옥에 가지 않은 채 챙긴 보너스를 들고 유유히 은퇴했습니다.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 정보의 비대칭성을 무기로 대중의 자산을 합법적으로 수탈하는 이 구조는, 자본주의가 지닌 엘리트주의적 폭력성을 가장 잔혹하게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4. 'AAA' 간판 뒤의 진실을 의심하라
"이것은 단순한 경제 위기가 아니라, 미국 경제 시스템 전체를 장악한 범죄였습니다." 영화 속 이 내레이션은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는 은행 창구 직원이 추천하는 펀드 상품이나 유명 기관이 부여한 '최고 안전 등급(AAA)'이라는 화려한 간판을 마주할 때, 막연한 신뢰를 거둬야 합니다. "이 상품을 나에게 팔아서 최종적으로 막대한 수수료를 챙기는 진짜 주체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의심하는 주체적인 금융 회의주의만이 필요합니다. <인사이드 잡>은 아무리 권위 있는 교수나 신용평가사일지라도 그들의 지갑을 채워주는 거대 자본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폭로하며, 우리 스스로가 냉철한 감시자가 되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내부자들의 합법적 먹잇감이 될 수 있음을 서늘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