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판장 한가운데서 피고인들이 조선의 전통 혼례복을 입고 나타나 재판관을 향해 호통을 치고 껄껄 웃습니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을 처음 보았을 때,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이토록 유쾌하고 오만할 수 있는 인간의 기개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는 무겁고 비장하기만 했던 기존의 일제강점기 배경 영화들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합니다.
하지만 그 유쾌한 조롱 이면에는 1923년 일본 도쿄 한복판에서 벌어진, 현대사에서 가장 끔찍하고 야만적인 제노사이드(집단 학살)의 비극이 서려 있습니다. 오늘은 관동대지진 직후 내각의 치부를 덮기 위해 조작된 '조선인 학살 사건'의 역사적 팩트와,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부에서 그들의 모순을 발가벗긴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아나키즘' 철학을 깊이 있게 분석해 보겠습니다.
1. 1923년 관동대지진과 국가가 조작한 대학살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 지방에 규모 7.9의 대지진이 발생합니다. 도쿄와 요코하마 일대는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고, 수십만 명의 사상자와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제가 역사적 사료를 통해 이 사건을 교차 검증하며 가장 분노했던 지점은 자연재해가 인재(人災)로, 그리고 다시 끔찍한 학살로 변질되는 과정이었습니다. 당시 흉흉해진 민심과 폭동의 조짐에 극도의 위기감을 느낀 일본 내각(내무대신 미즈노 렌타로)은 대중의 분노를 돌릴 완벽한 희생양을 찾습니다. 그들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고 폭동을 일으킨다"는 끔찍한 가짜 뉴스를 국가의 공권력을 동원해 의도적으로 유포했습니다.
이에 선동된 일본 민간인들은 자경단(자경조직)을 결성했고, 죽창과 몽둥이를 들고 거리로 나서 무고한 조선인 6천여 명을 무참히 학살했습니다. 이는 자연재해 앞에서의 무능함을 가리기 위해 국가가 주도하여 소수 민족을 희생양으로 삼은 명백한 '국가 범죄(State Terrorism)'이자 제국주의의 가장 추악한 민낯이었습니다.
2. 희생양에서 고발자로: 대역 죄인 박열의 탄생
조선인 학살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난이 거세질 조짐을 보이자, 일본 내각은 이번에는 조선인들의 폭동 의도를 '증명'해 줄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그들의 레이더에 걸려든 인물이 바로 도쿄에서 불령선인(불온한 조선인)들을 모아 활동하던 아나키스트 박열이었습니다.
일본 검찰은 박열에게 황태자 암살을 모의했다는 '대역죄(국가 전복 시도)'를 뒤집어씌웁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가혹한 고문 앞에 억울함을 호소했겠지만, 박열의 대응은 그들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갑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폭탄을 구하려 한 것이 맞다며 범행을 적극 인정합니다. 죽음을 피하기 위해 변명하는 대신, 이 재판을 전 세계의 기자들이 주목하는 '무대'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그는 재판관 앞에서 조선인 학살의 진상을 낱낱이 폭로하며 제국주의의 야만성을 전 세계에 생중계하는 스피커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3. 권위를 해체하는 유쾌한 무기, 아나키즘(Anarchism)
영화 속 박열과 그의 연인이자 동지인 가네코 후미코를 관통하는 철학은 '아나키즘(무정부주의)'입니다. 아나키즘을 흔히 '무질서와 혼란을 추구하는 사상'으로 오해하기 쉬우나, 인문학적 관점에서 이들의 아나키즘은 '부당한 권력과 억압 체제에 대한 단호한 거부'를 의미합니다.
가네코 후미코가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박열과 연대하여 법정에 선 이유는, 그녀가 맹목적인 애국주의자가 아니라 억압받는 모든 인간의 해방을 꿈꾼 아나키스트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절대 권력인 '천황(일왕)'의 존재를 우상에 불과하다며 논리적으로 해체합니다. 재판장에서 이들이 보여준 껄렁한 태도, 조선 관복을 입고 찍은 기념사진, 재판관을 향한 비웃음은 단순한 똘기가 아닙니다. 공포로 통치하는 권력에게 가장 치명적인 타격은 '두려워하지 않고 비웃어주는 것'임을 정확히 꿰뚫어 본,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 투쟁이자 철학적 조롱이었습니다.
4. 재난 시대의 혐오를 경계하며
<박열>은 100년 전의 역사적 비극을 다루고 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뼈아픈 시사점을 던집니다. 사회적 위기나 재난이 닥쳤을 때, 대중의 불안감을 자극하여 특정 집단을 악마화하고 혐오를 조장하는 방식은 오늘날의 가짜 뉴스와 교묘한 정치적 선동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권력의 기만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호탕하게 웃었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모습은, 진실을 가리는 혐오의 프레임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이성을 잃지 않고 부조리에 맞서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강렬한 이정표입니다. 생명조차 가벼이 여겨지던 야만의 시대에 그들이 증명해 낸 불굴의 자유의지는, 1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뜨거운 생명력으로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진실을 직시할 용기가 있느냐고 말입니다.